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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마지노선’은 최후의 보루가 아니다, 상식 알기

by 썬씽 2023. 4. 27.

마지노선은 최후의 보루가 아니다

흔히들더 이상 물러날 곳 없는 A팀은 이번 승부에 마지노선을 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노선은 여기까지야"라는 말 을 한다. '마지노선'은 협상이나 대결에서 물러날 수 있는 마지 막 지점을 의미할 때 쓴다. 보통 '최후의 보루(작은 성곽)와 같 은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 말이 통용되게 한 사람인 프랑스 국방 장관 앙드 레 마지노(Andre Maginot, 1877~1932)가 요즈음 우리가 마지 노선의 의미를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을 들었다면 어리둥절해할 것이다. 그는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최전방'을 뜻하는 의미로 마지노 전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때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4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와 독일이 맞닥뜨린 서부 전선에서 독일의 진격이 프랑 스의 반격에 막혀 주춤한 상황. 프랑스는 독일과 맞닿은 전선 을 따라 진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양측의 참호 사이는 어느 쪽이 공격하든, 상대방 진지에서 날아온 포탄과 총탄으로 전 사한 군인들로 가득했다. 그러면서 상대의 공격에도 버틸 수 만 있다면 종국에 승리한다는 방어 우선의 관념이 퍼졌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이런 생각은 프랑스 내에 더욱 굳건 히 자리를 잡는다. 진지, 참호를 더욱 탄탄하게 건설하는 것이 승리의 관건이라는 식으로. 이에 국방 정책은 거대한 장벽을 쌓아 국경을 완전히 차단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당시 드골 대 령(훗날 대통령이 되는 드골이다)은 미래의 전쟁은 이런 진지전이 아니라 전차 부대와 공군이 중심이 되는 기동 전*이 될 것이라 고 주장했으나 무시되고 말았다** 이후 마지노 국방 장관이 1927년부터 국경을 따라 스위스에서 북해에 이르기까지 무려 750km에 걸쳐 장벽을 쌓기 시 작했다. 중간중간에는 거점처럼 거대한 요새를 만들었다. 장 벽 아래에는 요새 사이를 연결하는 지하 통로가 있었다. 각 요 새는 자급자죽이 가능하도록 해서 적에 포위되더라도 장기간

저항할 수 있었다.

독일에 나치 정권이 들어서자 프랑스는 방어선 구축에 더 욱 매진했다. 가장 먼저 1936년 프랑스와 독일이 맞닿은 국 경 일대 350km 구간을 완공했다. 이 구간에는 142개의 요새 와 352개의 포대, 5,000여 개의 벙커가 설치됐다. 요새 외벽 은 포격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견고했다. 가장 얇은 콘크리트 벽 두께가 3.Sm에 달했다. 요새 앞에 독일군이 나타날 때를 대비해 각종 장애물과 중장거리 화포를 준비했다. 또 전력 공 급, 급수 및 배수 시설, 통신 시설 등을 설치하느라 당시 화폐로억 프랑이라는 거금이 투입됐다(1935년 한 해 동안 영국과 의 교역을 통한 프랑스의 총수입액이억 프랑이었다

그런데 마지노선은 룩셈부르크 부근에는 설치되지 않았다.

요새가 아니라 진지 같은 간단한 시설만 설치됐다. 중립국인 벨기에가 제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와 같은 편이어서 그 옆에 있는 작은 나라에까지 요새를 설치할 것 있느냐는 생각에다.

비용 부담도 한몫했다.

그러던 1939 10, 독일이 '전격전'으로 폴란드를 침공해 한 달 만에 함락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앞서1939년 9월에 프랑스는 독일에 선전 포고를 한 상태였다. 그 렇지만 프랑스, 독일은 서로 공격을 주저하고 있었다. 프랑스

는 독일이 먼저 공격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를, 독일은 프랑스의 요새 등 전쟁 준비 상태가 철저해 섣불리 선공했다가 자칫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프랑스는 독일이 마지노선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곳을 통해 침공해 오리라고 예상하고 벨기에 북쪽 전선에 부대를 대거 배 피해 대기하고 있었다. 사태가 급변한 것은 1940 5월 들 어서였다. 독일이 마지노선의 북쪽 끝이자 벨기에, 룩셈부르 크 국경의 남쪽 시작점인 아르덴 고원 제대로 기갑부대를 보 낸 것이다. 아르덴 고원은 숲이어서 바퀴 달린 도구가 지나가 기는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지던 곳이었다. 그런데 벨기에 남쪽과 마지노선 북쪽 사이의 허를 찌른 우회 전격전을 펼친 것이다.이로 인해 100만의 연합군 병력이 포위됐다(이 작전을 처 칠은 낫질하듯이 전차를 진군시켰다는 뜻에서 낫질 작전sickle-cutol라고 불렀다). 마지노선에 있던 요새의 프랑스군이 유일한 지원 군인데, 그들은 밖으로 나가 연합군을 도울 수 없었다. 독일군 일부가 마지노 전선에 남아 프랑스군을 계속 위협했기 때문이 다. 독일군은 연합군을 궤멸한 뒤 프랑스를 침공했고, 마지노 선 앞이 아니라 뒤에서(, 프랑스 영토 쪽에서) 마지노선 상의 요 새를 공격하는 협공 체제로 돌입했다. 프랑스군은 결국 저항을 포기하고 독일군에 항복하고 말았다.

이 과정을 놓고 보면 마지노선은 최전선에서 적을 방어하는 요새를 구축하는 것이 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별다른 힘도 써보지 못하고 독일의 전술에 밀 려 무용지물로 전락한 것이다(독일 전술이 아니었어도 이 요새들은 건설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무용지물로 변했다는 지적도 있다. 지반이 무 른곳에 거대 콘크리트 덩어리를 얹어 놓은 양 상이어서 지반 침하로 요새 내부에 습기가 차 고 물이 고여 지하 벙커는 거의 사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습기로 인해 대포는 녹이 슬고, 각종 질병이 발생해 병사들이 요새 밖에서 기거하면서 근무 때만 요새 안으로 들어가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독일군이 마지노선을 우회해서 다른 부대를 먼저 쓸어버리는 바람에 마지막으로 남은 마 지노선 상의 요새들이 '최후의 보루'로 인식됐 늘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애당초 요새들의 역할이나 용도는, 마지막까지 남아 전선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전쟁 초기에 적의 침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것이었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정작 필 요할 때 제 역할을 못 하는 애물단지 정도의 의미로 쓰여야 정 화할 것 같다.

전차를 처음 발명한 나라는 영국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은 전차 300 대로 전차 군단(9개 여단)을 편성했는데 노동당 정권이 부대를 4개 대대로 축소했다.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은 경전차 200, 중전차 117, 보병업호전차 90 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영국의 장군이었던 풀러는 《전격전의 기초이론(The Foundations of the Science of War)>이란 책을 써서 미래의 전쟁은 전차가 주도하 는 기동전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 책을 탐독한 것은 영국군이 아니라 독일군이었다.여기에 독일의 구데리안 대위가 전차를 연구하면서 연합군이 전차를 갖고 도 결정적으로 전쟁을 주도하지 못한 이유를, 기동력을 말에 의존하는 바람에 보병 등의 지원 부대가 전차와 협동 작전을 수행할 수 없었던 점을 꼽았다. 히틀러는 구 데리안의 연구에 관심을 표명하면서 기계화사단을 창설했다. 특히 히틀러는 아르 덴 고원 침공작전을 설계한 에리히 폰 만슈타인 중장의 아이디어가 무모하다고 다른 전선으로 배치시킨 것을 되돌리고 작전을 강행했다.

드골 대령의 주장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사실로 드러났다. 전격적으로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군을 본 프랑스는 드골을 독일의 프랑 스 침공 하루 전에야 기갑 사단장으로 임명하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출처 : 상식으로 시작하는 한 뼘 인문학-최원석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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